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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간첩죄의 문이 70여 년 만에 크게 달라집니다. 과거 형법은 사실상 북한 같은 ‘적국’을 위한 행위를 중심으로 처벌했지만, 2026년 9월 13일 시행되는 개정법은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행위까지 별도 조항으로 다룹니다. 다만 외국 회사와 자료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간첩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 조항의 핵심은 외국 등의 지령·사주·의사 연락 아래 ‘국가기밀’을 탐지하거나 모으고, 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돕는 행위입니다.
바뀐 것은 상대방의 범위, 그대로 남은 것은 구성요건
법무부가 3월 12일 공개한 개정 이유는 간첩죄의 상대를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까지 넓히는 것입니다. 새 형법 제98조의2는 이런 상대를 위해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방조한 사람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정했습니다. 미수뿐 아니라 예비·음모·선동·선전도 처벌 대상에 포함됩니다. 시행일은 공포일과 다른 9월 13일이므로, 3월 보도와 오늘의 법적 효력은 구분해야 합니다.
여기서 ‘국가기밀’은 회사가 비밀 표시를 붙인 모든 문서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법원이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한정된 사람에게만 알려져 있고 외국에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물건·지식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영업비밀이나 국가핵심기술은 별도 법률로도 보호될 수 있지만, 그 이름만으로 새 간첩죄의 국가기밀 요건이 자동 충족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 빠뜨리기 쉬운 조건은 외국 등의 지령, 사주 또는 그 밖의 의사 연락입니다. 단순 실수로 잘못 첨부한 파일, 일반적인 해외 공동연구, 공개 자료의 번역과 새 조항이 같은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에서는 정보의 성격, 상대, 연락 과정, 목적과 행위를 함께 따지므로 제목 하나로 유무죄를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반도체 뉴스와 법 조문을 같은 숫자로 묶지 말아야 한다
이번 시행이 반도체·배터리·조선 같은 첨단 산업과 함께 보도되는 이유는 기술 유출이 국가안보 문제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국가정보원은 연도별 적발 사례에서 연구원이 OLED나 조선 기술 자료를 해외로 넘긴 사건 등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유출 통계의 한 건이 곧 간첩죄 유죄 한 건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적용 법률과 증명해야 할 요건이 서로 다릅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행일 당일 한국이 반도체 기밀을 지키기 위해 간첩법을 넓혔다고 주요 기사로 다뤘고, 국내 매체도 시행을 앞두고 수사 역량과 과잉 적용 가능성을 함께 짚었습니다. 이 쟁점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처벌 범위가 넓어졌다는 사실과 정상적인 국제 협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걱정이 동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의 빈틈을 메웠다는 안도감만큼, ‘기밀’이라는 넓은 일상어가 법률 요건보다 앞서 달릴 때 생길 혼란이 걱정됩니다.
그래서 보도 숫자를 읽을 때는 세 칸으로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술 유출로 적발되거나 수사된 사건 수, 둘째는 검찰이 적용한 죄명, 셋째는 법원이 확정한 유죄 수입니다. 세 숫자의 분모와 시점이 다르면 서로 더하거나 ‘대부분 간첩죄’라고 바꿀 수 없습니다. 새 법의 실제 효과도 시행 뒤 접수 건수만이 아니라 기소와 판결까지 보아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해외 협업을 멈추기보다 자료의 경계를 먼저 그린다
기업과 연구기관이 오늘 바로 할 일은 외국 파트너와의 연락을 일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자료를 공개 정보, 사내 제한 정보, 영업비밀, 법정 보호기술, 국가안보 관련 정보처럼 실제 근거에 따라 분류하고,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볼 수 있는지 기록해야 합니다. 이름만 ‘대외비’로 붙이는 것보다 분류 근거와 승인 책임자를 남기는 편이 대응에 도움이 됩니다.
가상 예시로, 해외 장비업체가 고장 분석을 위해 설계 파일 전체를 요청했다고 해보겠습니다. 담당자는 곧바로 전체 파일을 보내거나 무조건 거절하기보다 계약상 목적, 필요한 최소 도면, 재전송 금지, 저장 기간, 접근 인원, 삭제 확인을 차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부분만 가려 전달하고 승인을 기록하면 정상 협업의 목적과 정보 통제 과정을 함께 설명하기 쉬워집니다.
퇴직자와 외부 자문 인력의 계정도 놓치기 쉽습니다. 퇴직일에 접근권한을 끊고, 개인 메일·개인 저장장치 전송을 제한하며, 예외 승인과 다운로드 기록을 보존해야 합니다. 다만 감시 범위를 무한정 넓히면 개인정보와 노동관계 문제를 만들 수 있으므로 회사 규정, 계약, 관련 법률과 비례성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보안 점검은 사람을 의심하는 행사가 아니라 정보가 움직이는 경로를 확인하는 절차여야 합니다.
의심되는 연락을 발견했을 때 복사부터 하지 않는다
직원이 수상한 요청이나 대량 다운로드를 발견했다면 증거를 모으겠다며 상대 계정에 들어가거나 파일을 여기저기 복사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사내 보안·법무·준법 담당자에게 정해진 경로로 알리고, 원본 로그와 기기의 상태를 바꾸지 않도록 보존 절차를 따르는 편이 안전합니다. 급박한 국가안보 사안은 국가정보원의 111 신고 안내를 확인할 수 있고, 범죄 피해나 진행 중인 위험은 경찰 등 적절한 수사기관에 연락해야 합니다.
개정법이 오늘 시행됐다고 해서 과거 행위에 새 죄를 거꾸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형벌은 행위 당시 법률에 따라 판단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과거에 시작된 연락이 시행 뒤에도 이어지는 사건은 사실관계가 복잡할 수 있으므로, 당사자는 기사만 보고 자료를 지우거나 말을 맞추지 말고 변호사의 구체적인 조언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이미지는 실제 반도체 회사, 기밀문서, 수사기관 또는 사건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반도체 웨이퍼와 닫힌 문서철, 법의 경계선을 배치한 생성형 편집 일러스트입니다. 문서의 표식과 회로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구성일 뿐 실제 보안등급이나 특정 기업의 설계를 재현하지 않습니다.
새 법 앞에서 가장 먼저 묻는 질문
간첩죄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행위까지 처벌의 상대 범위에 넣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외 협업이나 모든 회사 기밀이 곧 간첩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기밀인지, 외국 등의 지령·사주·의사 연락이 있었는지, 어떤 탐지·수집·누설 행위가 있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기업은 거래를 멈추기보다 자료 분류, 최소 제공, 승인 기록, 접근권한 회수부터 점검하는 것이 현실적인 첫 대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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